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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The Research Institute of Won-buddhist Thought  

보도자료

제목

[개벽종교답사] [제2차 답사-군산지역] 세상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고민한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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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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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근대한국개벽종교연구팀이 2차 답사지로 군산을 선택했다. 군산은 1899년 개항 후 일본세력의 진출로 인해 식민지화가 일찍 진행된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연구팀은 답사의 전제를 ‘역사에 담긴 사상, 정신, 철학, 종교를 고정된 존재로 보지 않고,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보자’는 데 둔다. 19일 군산지역 개벽종교 흔적을 따라 옥구농민항쟁기념비, 동국사, 말랭이 마을,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이영춘 기념관, 낙영당, 연재 송병선 묘 등을 찾았다. 연구팀은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토론하는 방식으로 답사를 진행했다. 
 근대한국개벽종교연구팀이 옥구농민항쟁기념비를 둘러보고 있다.
<근대한국개벽종교연구팀이 옥구농민항쟁기념비를 둘러보고 있다.>

거대 농업자본을 통한 식민지화에 반발
1899년 개항에 이어 1904년 러일전쟁 직후 일본인들은 소규모 자본(3천~5천 엔)으로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호남을 선호했다. 그렇게 군산은 농업자본 진출 통로가 되었고, 이리역에는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농장사무소가 25개나 들어선다. 이 과정과 1924년 소태산 대종사가 불법연구회를 익산에 창립한 흐름은 연결된다. 당시 이리는 ‘신흥(새롭게 일어나는)’ 땅이었다.

일제가 토지를 근간으로 살아가는 조선인들을 착취하는 가운데, 1927년에 옥구에서 항쟁이 일어났다. 이곳에서 박맹수 원광대학교 총장은 “옥구농민항쟁을 단순한 소작농 운동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옥구농민항쟁 주도자에 연재 송병선(조선 말의 문신·우국지사)의 제자들이 포함되어 있어 민족주의적 정신과 민족주의적 의식을 이어가는 활동이었다는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에 의해 군산과 옥구, 익산 등지의 농업이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데 힘을 싣는 주장도 일부 일리는 있다. 하지만 연구팀은 “우리의 손과 우리의 자주 역량에 의해 발전할 길이 훼손된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직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인에 대한 사과 담은 일본식 사찰
연구팀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동국사다. 동국사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로, 1909년에 일본 조동종 노승이 세운 절이다.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됐다가 1970년에 동국사(해동 대한민국의 줄임말)로 개명했다. 한국의 절이라는 뜻이다.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시 철거가 검토되었지만, 여러 상황을 거치며 2003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특징은 또 있다. 일본 조동종은 1993년, 과거 침략에 앞장섰던 조동종의 과오를 인정하는 참사문(懺謝文·참회하고 사과함)을 발표했다. 일본 불교 중 최초로 이뤄진 사과였다. 참사문은 인간 차원의 운동이 일어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3·1운동과 종교의 관계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과 말랭이 마을, 빈해원 등을 거쳐 도착한 곳은 군산 지역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이다. 연구팀은 이곳에서 종교가 세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기했다. 군산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이 구암교회 교인들과 영명학교·멜본딘여학교 학생 및 교사들, 궁멀 예수병원 직원들을 주축으로 해 이뤄진 역사가 대표 사례라고 했다. 3·1운동과 종교의 관계에 있어 교회가 민족을 결합시키고 이들의 신념을 결집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전북지역의 3·1운동 전개 상황 통계에서 군산과 옥구(당시는 행정구역이 분리)에 동원된 인원은 3만 7백명으로, 전주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근대한국개벽종교연구팀이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을 둘러보고 있다.
<근대한국개벽종교연구팀이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을 둘러보고 있다.>

근대 공중보건 흔적을 찾아서
연구팀은 이영춘 가옥으로 향했다. 서구식, 일식, 한옥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양식의 가옥이다. 한국인 1호 의학박사이자 해방 이후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는 1935년에 일본인 거대 농장이었던 구마모토 농장의 병설 자혜의원에 부임해 농촌의료봉사에 헌신했다. 농촌위생연구소를 설립해 농촌위생연구사업을 적극화했고, 간호고등학교도 설립했다.

답사 중 “당시 불법연구회는 의료실태에 얼마나 접근하고 있었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박 총장은 “근대의 불법연구회가 의료와 보건에 다방면으로 고뇌한 결과가 원기13년(1928) 제1회 기념총회 때 병원 설립 결의, 원기20년(1935) 보화당 설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종화 교무(원광대학교대학교당 교감)는 “원광대학교의 첫 공간이기도 했던 공회당 문 위를 빙 두른 창문이 있다. 이는 결핵을 예방하기 위해 환기가 잘 되게 하자는 의견제출을 받아 후에 설치된 것”이라고 했다. 불법연구회의 의료와 위생에 대한 기록이 『월보』와 『회보』 등에 남아있다고도 했다.
 

이영춘 가옥.
<이영춘 가옥>

연구팀은 근대 유림의 흔적도 살폈다. 낙영당은 연재 송병선이 유학자로서 머무르며 후학을 교육하던 장소다. 하지만 낙영당 강회에는 후일 호남 의병을 선도하는 이들도 참석했다고 한다. 불법연구회를 만나기 전 정산종사의 스승이 파리장서 사건의 핵심 인물인 공산 송준필이라는 점이나, 수운 선생의 아버지인 근암 최옥이 성리학 연구에 힘쓰면서 주자와 퇴계의 학설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이라는 점은 유학 또는 유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길을 따라가며 살핀 역사 속에서, 우리는 ‘한국 땅에 존재했던 모든 종교는 이 땅의 안녕을 위해 노력했음’을 발견한다. 세상이 다시 힘들다고 한다. ‘세상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다시 고민할 때다.
 말랭이 마을.
<말랭이 마을>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2022년 3월 21일자]

출처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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