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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The Research Institute of Won-buddhist Thought  

보도자료

제목

[개벽종교답사] [제3차-완주지역] 완주- 진묵대사 부도 앞에서 소태산의 눈을 좇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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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
내용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완주는 동학과 불교, 원불교 등 근대한국개벽종교의 사상적, 역사적 흔적이 짙게 남은 곳이다. 그러기에 근대한국개벽종교연구팀(이하 연구팀)에게 3차 답사지 완주는 그 의미가 컸다. 연구팀은 답사에 앞서 ‘동학에서 원불교로 이어진 근대개벽종교가 보여준 풍부한 사상적 유산과 자산, 자원을 깊이 들어가 공부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는데 목적을 두고 답사를 시작했다. 4월 30일에 진행된 완주군 답사는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 봉서사, 대둔산 일대를 중점으로 각자의 지식과 의견, 문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교조신원운동과 2차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
처음으로 찾은 곳은 삼례읍에 있는 ‘삼례봉기 역사광장’이다. 이곳에서 1892년 11월 동학교도 수천 명이 집결, 교조 최제우의 신원(伸冤)과 포교의 자유·동학교도 침탈금지를 요구했다. 이어서 1894년 9월에 전봉준이 대도소를 설치해 2차 봉기를 대대적으로 준비한 곳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동학농민군들은 ‘이 나라의 잘못된 정치 질서를 바로 잡야야겠다’는 의식을 갖게 됐다.

이곳은 2003년 10월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완주지부’와 완주군이 조성한 공원으로 ‘추념의 장’과 ‘대동의 장’, ‘동학농민군 출진상’ 등의 조형물로 조성됐다. ‘추념의 장’은 돔 형태의 추모 조형물로서 동학군 뒤에서 활약한 여성들의 모습도 드러내 동학농민혁명에서 여성의 역할을 재조명했다. 또 중앙의 거울에 반사되는 조형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동학의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이야기에 담긴 민중사상을 찾아서
연구팀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완주군 용진면 소재의 봉서사다. 봉서사는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727년 신라 성덕왕이 창건, 고려 시대에 나옹, 조선 시대에 진묵이 중창한 지방 굴지의 대찰로 유서 깊은 절이다. 하지만 6.25 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1963년, 1975년 호산스님이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진묵대사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고, 조선 후기 1847년 초의선사가 집필한 『진묵대사 유적고』가 신뢰할만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사료보다 수많은 이야기로 전해지는 진묵대사와 소태산 대종사가 얽힌 내용이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진묵대사가 유언으로 남긴 “내 부도가 하얗게 되면 내가 세상에 다시 온 줄 알라”는 말을 듣고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그 부도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이외에도 소태산 대종사가 진묵대사를 언급한 법문과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박맹수 원광대학교 총장은 “전북지역의 많은 설화와 이야기에 진묵대사가 주로 등장한다. 이는 진묵대사가 전북 일대 민중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인물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이어서 “소태산 대종사의 봉서사 방문이나 진묵대사의 이야기를 야사라고 무시해서도 안 되고, 정사라고 고집해도 안 되는 그 다이내믹을 읽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민담과 전설이 논리화, 체계화되면 사상과 철학이 되고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 속에는 수천 년 이 땅에 내려와 모두가 공감하는 정서적 DNA가 담겨있어 이런 부분을 잘 포착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다시 쓰여야 할 동학농민혁명사
연구팀의 발걸음은 마지막으로 대둔산 동학농민군 최후격전지(이하 격전지)로 향했다. 대둔산 정상에 가까이 있는 격전지는 지금도 찾아가기 힘든 험로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 2차 동학농민혁명 중 우금티전투, 연산전투에서 패퇴한 동학농민군이 최후항쟁을 하기 위해 대둔산에 들어온 것이다. 입산 초에는 60명 정도의 규모였다가 계속되는 항전 속에 최후를 맞이할 때는 약 25~30명 정도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 따르면 대둔산 격전지는 일본군 토벌대의 최종 토벌지였고, 최후항쟁을 하던 동학농민군은 소년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살됐다. 20대 중반의 임산부도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연구팀은 “삼례봉기 역사광장에서도 등장한 동학농민혁명 속의 여성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박 총장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동학농민혁명이 우금티전투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뒤로 연산전투, 대둔산 최후항쟁이 있었다”며 “그 속에 우리가 주목하지 못한 ‘동학농민군을 몰래 도왔던 연산 현감과 후손들’ 같은 내용이 있다. 130여 년 전 전투는 끝났지만, 그 피땀 위에 사는 우리는 역사를 끊임없이 재조명해야 한다”는 말로 답사를 마무리했다.


[2022년 5월 9일자]

출처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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